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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nsuelo de Saint-Exupéry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Search: 카테고리 없음 카테고리 없음 2026. 2. 6. 09:17

     

    'Consuelo de Saint-Exupéry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와 사건 https://infos.tistory.com/7485'

    'Antoine de Saint-Exupé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상태 https://infos.tistory.com/7484'

     

     

    출처: es.wikipedia.org

     

    엘살바도르 출신의 작가이자 예술가였다. 생텍쥐페리를 만나기 전 이미 두 번의 결혼과 사별을 경험한 재기발랄하고 자유분방한 여성이었다. 멕시코의 군인과 과테말라의 저명한 문필가였다.

    1930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텍쥐페리를 만났다. 기록에 따르면 생텍쥐페리는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비행기에 태워 하늘에서 청혼했을 정도로 첫눈에 반했다.
    TalsOfRose: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생텍쥐페리는 콘수엘로를 비행기에 태우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조종간을 놓은 채 그녀에게 "지금 당장 키스해주지 않으면 비행기를 추락시키겠다"고 협박 섞인 고백을 했다. 콘수엘로는 결국 그의 뺨에 키스했고, 이것이 비극적이고도 아름다운 13년 결혼 생활의 시작이었다.

    어린왕자 작품 속 장미는 허영심이 있고 변덕스럽지만, 동시에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존재다. 실제 콘수엘로 역시 정열적이고 예민한 성격으로 생텍쥐페리와 불같은 사랑과 갈등을 반복했다. "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장미를 위해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라는 구절은, 잦은 별거와 다툼 속에서도 끝내 서로를 놓지 못했던 두 사람의 복잡한 관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The Tale of the Rose (장미의 추억)

    그녀가 사망한 지 20여 년이 지난 2000년에야 원고가 발견되어 『장미의 추억(The Tale of the Rose)』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을 통해 생텍쥐페리가 천재적인 작가인 동시에, 남편으로서는 얼마나 아이 같고 힘든 상대였는지, 그리고 두 사람이 얼마나 서로를 깊이 갈구했는지가 세상에 알려졌다.

    콘수엘로는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두 번째 남편인 엔리케 고메스 카리요와 함께 안치되어 있다. (생텍쥐페리는 시신을 찾지 못해 그곳에 묘비만 있다.)

    이 책은 1940년대 중반에 쓰였으나 약 60년 동안 세상에 나오지 못했다. 프랑스의 영웅인 생텍쥐페리의 도덕적 결함(외도, 무책임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을 것이다(본인 또는 주변).

     

    일부 내용

    생텍쥐페리는 아이처럼 자기중심적이었다. 밤새도록 글을 쓰거나 친구들과 어울리며 콘수엘로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당연하게 여겼다. 새벽 3시에 친구들을 떼거지로 몰고 집에 들어와 자고 있는 콘수엘로를 깨워 오믈렛을 만들라고 시키기 일쑤였다. 참다못한 콘수엘로는 짐을 싸서 집을 나가버리거나, 다른 방에 문을 잠그고 들어가 시위를 하기도 했다. 생텍쥐페리는 그녀의 화를 풀기 위해 문밖에서 몇 시간 동안 편지를 써서 문틈으로 밀어 넣으며 용서를 구하곤 했다.
    그는 수시로 다른 여성들과 연애를 즐겼고, 이를 콘수엘로에게 숨기지도 않았다. 콘수엘로가 고통스러워할 때마다 그는 "당신은 내 장미니까 이해해야 해"라는 식으로 교묘하게 설득하며 그녀를 정서적으로 구속했다.
    생텍쥐페리는 비행이나 집필을 핑계로 자주 집을 비웠고, 귀족 집안이었던 시댁 식구들은 그녀를 '이물질' 취급하며 따돌렸다. 남편의 변덕과 외도로 인해 콘수엘로는 심한 우울증과 정신적 불안을 겪었다. 책에는 그녀가 남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소동을 피우거나, 반대로 남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는 격정적인 장면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콘수엘로는 남편이 비행 때문에 자신을 홀로 둘 때마다 느꼈던 '유기 공포'를 극심한 히스테리와 자존심으로 표출했음을 고백한다. (예: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 일부러 파티에 가거나, 다른 남자와 다정한 척하며 질투를 유발한 사건 등) 결혼 직후, 생텍쥐페리는 아내를 집에 혼자 두고 친구들과 밤새 비행에 대해 토론하거나 외출하는 일이 잦았다. 그녀는 이때 자존심 때문에 서운함을 말하지 않고, 오히려 남편이 돌아왔을 때 일부러 외출 준비를 마치고 나가버리거나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노는 척하며 '복수'를 했다.
    작가가 소설 속 왕자처럼 순수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현실에서는 아내의 자존심에 지쳐 다른 여성들과 외도를 하거나 대화를 거부하며 아내를 고독하게 만들었던 '어른들의 추악한 갈등'이 가감 없이 묘사된다.
    콘수엘로는 남편이 사고로 다쳐서 돌아왔을 때조차, 그가 자신을 충분히 사랑한다는 확신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갑게 대한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실종되기 직전 콘수엘로에게 "당신을 길들였기에 나는 당신에게 책임이 있소"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 이는 작품 속 명대사가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망가뜨릴 정도로 사랑했던 아내에게 바치는 유언이었음을 시사한다.

     

    첫 번째 남편: 리카르도 카르데나스 (Ricardo Cárdenas)

    멕시코 육군 대위.
    콘수엘로는 젊은 시절 가족이 정해준 결혼을 피하기 위해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유학을 떠났고, 그곳에서 리카르도를 만나 1922년에 결혼했다.
    이 결혼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이혼으로 끝났다.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서 이혼녀라는 꼬리표는 큰 흠이었기에, 그녀는 사별했다고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식 기록상 그는 1923년경(혹은 직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결과적으로는 젊은 나이에 미망인이 된 셈이다.
    당시 멕시코는 정치적 혼란이 극심했던 시기라 젊은 군인들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콘수엘로는 그와 이혼했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사별했다고 말하기도 하는 등 기록이 엇갈리지만, 그가 젊은 나이에 숨진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 남편: 엔리케 고메스 카리요 (Enrique Gómez Carrillo)

    과테말라 출신의 외교관이자 작가, 언론인이다. 당시 유럽 문단에서 꽤 유명했던 '모더니즘의 거장' 중 한 명으로, 80권에 가까운 책을 쓴 지식인이었다.
    콘수엘로는 멕시코에서 공부하던 중 당시 교육부 장관이자 사상가였던 호세 바스콘셀로스의 보호 아래 파리로 건너갔고, 그곳에서 카리요를 만나 1926년 결혼했다.
    짧은 결혼과 사별: 카리요는 그녀보다 나이가 훨씬 많았으며(약 28세 차이), 결혼한 지 불과 11개월 만인 1927년에 사망했다.
    뇌출혈(Aneurysm)로 인한 급사. 그는 콘수엘로와 결혼할 당시 이미 50대 중반(58세)이었고, 콘수엘로는 20대 중반이었다. 그는 평소 방탕하고 화려한 생활을 즐기던 '보헤미안' 스타일이었는데, 파리에서 정열적인 삶을 살다가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결혼 11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카리요의 유족들과 유산 배분 문제를 두고 복잡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했다.

    콘수엘로는 그로부터 파리와 니스에 있는 저택 등 상당한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이 유산을 정리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갔다가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생텍쥐페리를 만나게 된다.

     

     

    세 번째 남편 Antoine de Saint-Exupé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Antoine de Saint-Exupé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https://infos.tistory.com/7484'

    그녀의 남편들이 연달아 사망하자, 생텍쥐페리의 가족(특히 그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콘수엘로를 매우 싫어했다.
    생텍쥐페리 가문은 유서 깊은 귀족 집안이었는데, 외국인이고 두 번이나 결혼했던 콘수엘로를 '불운을 가져오는 여자' 혹은 '재산을 노리는 여자'로 치부하며 멸시했다.

    생텍쥐페리가 실종된 후, 그의 가족(시댁)은 콘수엘로를 법적 상속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특히 생텍쥐페리의 어머니는 그녀를 매우 차갑게 대했고, 생텍쥐페리의 저작권 수입 등을 두고 오랜 갈등을 겪었다.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의 '국민적 영웅'이었고, 그녀는 '외국인 출신의 변덕스러운 아내'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다.

    콘수엘로가 생텍쥐페리 사후에 『장미의 추억』이라는 회고록을 써두고도 바로 출판하지 못한 이유(사후 20년 뒤 발견)는, 자신을 향한 가문의 적대감과 세간의 부정적인 시선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이 원고를 20년 후 발견 당시 트렁크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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