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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e de Saint-Exupé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집필할 시기의 상태
'Marie de Fonscolombe (마리 드 퐁콜롱브) https://infos.tistory.com/7491'
'Consuelo de Saint-Exupéry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https://infos.tistory.com/7486'
'Consuelo de Saint-Exupéry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와 사건 https://infos.tistory.com/7485'
'Silvia Hamilton Reinhardt (실비아 해밀턴 라인하르트) https://infos.tistory.com/7488'
'ExistentialMysticism (실존적 신비주의) in TheLittlePrince https://infos.tistory.com/7489'

1942년 5월 퀘벡주 몬트리올 근처에서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드 생텍쥐페리 가문 (Maison de Saint-Exupéry)
생텍쥐페리의 가문은 프랑스 남부 리무쟁(Limousin) 지역에 뿌리를 둔 유서 깊은 귀족 집안.
1904년 아버지의 사망
아버지는 보험회사 검사관으로 일하며 겨우 가문의 품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41세의 나이로 사망했을 때, 5명의 어린 자녀가 남겨졌다. 그가 죽자마자 고정 수입이 사라졌다.
어머니 마리는 재산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성(Château)에서 거주하며 귀족 교육을 고집했다. 남편이 남긴 약간의 연금과 조상 전래의 가구, 보석, 작은 땅들을 하나씩 팔아 아이들의 사립학교 학비를 댔다.마리 마들렌 (첫째) 가톨릭 사립 여학교 (사가 교육) 전형적인 귀족 영애 교육 (예술, 교양) 미혼으로 생을 마감.
시몬 (둘째) 가톨릭 사립 여학교 문학적 소양 위주의 교양 교육 작가로 활동했으나 경제적 자립은 미비.
앙투안 (셋째) 에콜 보쉬에, 빌라 플로리몽(스위스), 에콜 나발(낙방) 최고급 사립 교육 및 해군사관학교 준비 시험 공포증으로 실패, 결국 비행사로 전향.
프랑수아 (넷째) 빌라 플로리몽 (스위스 유학) 형과 함께 최고급 유학 교육 지원 15세에 병사.
가브리엘 (다섯째) 가톨릭 사립 여학교 가정 내 교육 및 사립 교양 교육 결혼. (결국 가문의 대를 간접적으로 이은 사람).생모리스 드 레망(Saint-Maurice-de-Rémens): 이 성은 친할머니의 소유였다. 1904년 아버지가 죽자마자 이 성조차 상속세와 유지비 문제로 위태로워졌고,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친척들에게 팔리거나 처분되었다.
1910년대, 가문의 자산 매각과 의존
친척들의 도움(주로 외가인 퐁콜롱브 가문)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앙투안은 남의 집(친척의 성)에 얹혀살면서 '돈은 없지만 신분은 높은 성(Château)에 계속 살았다.
라 몰(La Môle): 이 성은 외가(어머니의 친정)의 소유였다.
그가 17세 때, 남동생 프랑수아가 류머티스열로 숨을 거둔다.1920년대. 결정적인 파산 (해군사관학교 낙방 이후)
가문이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것은 앙투안이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안정적인 장교의 길을 걷는 것이다.
1919년, 앙투안은 해군사관학교 구술시험에서 시험 공포증으로 낙방한다.
이 시기부터 가문은 완전히 파산 상태에 직면한다. 앙투안은 먹고살기 위해 트럭 운전사, 타일 판매원 등 온갖 잡일을 했다. 귀족 청년이 겪은 이 '실무적 밑바닥' 경험이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수치였고, 그 탈출구로 선택한 것이 바로 '비행'이었을 것이다.현실은 남의 집에 얹혀사는 가난한 처지(친척들의 배려로 성의 한 구석을 빌려 쓰기).
보여지는 시선은 성에서 사는 고귀한 백작 가문을 유지.
큰 괴리를 경험한다, "눈에 보이는 재산(성, 돈)은 중요하지 않고, 내면의 고결함(귀족 정신)이 진짜다"라는 실존적 신비주의의 기반이 되었을 경험일 것이다.비행 사고로 인한 '신체적 후유증' (만신창이의 몸)
사막 추락 사고(1935년): 『어린 왕자』의 배경이 된 리비아 사막 추락 당시, 5일간 사막을 헤매며 극심한 탈수와 환각을 겪었다. 이때 신장과 간에 큰 손상을 입었다.
과테말라 사고(1938년): 이 사고로 두개골 골절, 어깨 파쇄, 다리 골절 등 전신에 중상을 입었다.
상태: 소설을 집필할 당시 그는 똑바로 앉아 있는 것조차 고통스러워할 정도로 만성 통증에 시달렸다.
정신적 질병: '우울증과 전쟁 공포'
우울증(Depression): 조국 프랑스가 나치에 점령당한 뒤 미국으로 망명했을 때, 그는 극심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빠졌다. "나만 안전한 곳에 도망쳐 왔다"는 죄책감이 그를 괴롭혔다.
불면증: 통증과 우울함 때문에 밤마다 잠들지 못하고 코카콜라와 담배에 의지해 집필에 몰두했다. 어린 왕자가 밤에 별을 바라보며 사색하는 장면들은 작가의 불면증 어린 밤들의 기록이다.
콘수엘로와 애증의 관계
아내 콘수엘로와의 갈등으로 인한 '정서적 탈진' 상태였다.
소설속 '자존심 센 장미'와의 관계는 그에게 심각한 스트레스성 질환을 안겨주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했지만 끊임없이 상처를 주었고, 생텍쥐페리는 심리적으로 완전히 고갈(Burn-out)된 상태였다.
1935년 리비아 사막 추락 경험
부조종사 프레보와 함께 단 500cc의 와인과 약간의 과일로 5일간 사막을 헤맸으며, 심각한 탈수 상태를 경험 했다.
환각의 구체적 내용: "사막에 나타난 존재들"
생텍쥐페리의 회고록 『인간의 대지』에 묘사된 그의 환각 상태는 매우 생생하다.
신기루와 목소리: 그는 모래 언덕 위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거나, 존재하지 않는 호수와 오아시스를 끊임없이 보았다.
사막 여우와의 만남: 실제로 사막에서 작은 귀를 가진 '페넥 여우(Fennec Fox)'를 보았는데, 그는 이 여우가 자신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고 느꼈다. 이것이 소설 속 여우의 모티프가 되었다.
금색 머리카락의 아이: 가장 중요한 환각은 '작고 낯선 소년'의 환영이었다. 고독과 죽음의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이자 내면의 자아인 '어린 왕자'와 대화하는 환각을 겪기 시작했다.
환각의 과학적·심리적 근거
의학적으로 '탈수성 섬망(Delirium)'과 '고독에 의한 해리 현상'으로 설명.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 40°C가 넘는 사막에서 수분 부족은 뇌 기능을 마비시켜 시각 피질의 오류를 일으킨다.
자아의 투영: 극한의 고독 상태에서 인간의 뇌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대화 상대를 만들어낸다. 질문자님께서 보신 "지친 왕자"는 사실 죽음의 문턱에서 작가가 만난 자기 자신이었다.
비행중 실종
책을 펴낸 직후, 몸이 아파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정찰 비행을 나갔다가 실종되었다. '사회적/물리적 자살'에 가까운 행동으로 보인다.
그에게 죽음(뱀의 독)은 무서운 종말이 아니라, 아프고 무거운 육체를 벗어던지고 고통이 없는 '장미의 별'로 돌아가는 유일한 치유책이었을 것이다. 병든 몸으로는 더 이상 장미를 책임질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마지막 비행의 문제
군의 공식적인 출격 거부
당시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당시 P-38 같은 고성능 정찰기 조종사의 정년은 보통 30세에서 최대 35세였다. 그는 규정상 이미 비행을 멈춰야 하는 노병이었다.
과거 사고로 전신이 망가져 혼자서는 낙하산 끈조차 매지 못했고, 산소 마스크를 쓰는 것도 힘들어했다. 조종석에 앉을 때마다 동료들이 몸을 밀어 넣어줘야 할 정도였다.
지휘관들은 그가 심각한 우울증과 무력감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비행 중 집중하지 않고 몽상에 빠진다"는 보고가 잇따랐다.
비행을 위한 '정치적 압박'
그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미 공군의 아이라 이커(Ira Eaker) 장군에게 직접 편지를 쓰고 매달렸다. "나는 조국 프랑스가 해방되는 것을 하늘에서 직접 봐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결국 장군의 특별 허가로 '딱 5번의 임무만 더 수행한다'는 조건부 복귀를 허락받는다. (실종된 날은 이 약속된 횟수를 이미 초과했거나, 마지막 횟수 근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막 비행 당일의 구체적 상황 (1944. 7. 31.)
그는 비행 전 동료들이 건네는 농담에 응하지 않았고, 마치 작별 인사를 하는 사람처럼 무겁고 엄숙했다.
정비병들이 기체 상태가 완벽하지 않으니 다음 기회에 나가라고 조언했으나, 그는 "아니, 오늘 꼭 나가야만 한다"며 고집을 부려 이륙했다.
그가 배정받은 정찰 구역은 프랑스 남부의 그르노블 지역이었으나, 그는 그곳을 벗어나 적군의 방공망이 가장 촘촘한 해안가 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생텍쥐페리가 속해 있던 제2/33 정찰대대(GR II/33) 동료들은 그의 마지막 비행 전후 상태를 매우 비정상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증언 1 (장 르 로이 소령): "그는 마치 자기 자신을 벌주려는 사람 같았다.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비행 중에 적군을 만나 죽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였다."
증언 2 (부대원들): 평소 그는 비행 전 점검을 소홀히 하거나, 조종석에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등 극도의 무기력증(Depression) 상태를 보였다고 한다. 동료들은 그가 "살기 위해 비행하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기 위해 비행한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공통적으로 증언했다.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임무에서 취한 행동은 베테랑 조종사로서 이해하기 힘든 '자살적 비행'이다.
당시 그가 몰았던 P-38 라이트닝 정찰기는 무장이 전혀 없는 '비무장' 상태였다. 적군의 레이더와 전투기(독일군 루프트바페)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고공으로 진입했다.
당시 그는 44세로 고고도 비행을 견디기엔 몸이 너무 약했다. 그는 산소 마스크가 고장 나거나 희박한 공기 때문에 의식을 잃을 수 있음에도 무리하게 고도를 높였다.
독일군 조종사의 증언 (호르스트 리페르트)
2008년, 당시 그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독일군 조종사 호르스트 리페르트(Horst Rippert)가 나타났다.
"나는 정찰기 한 대를 발견했고, 그것을 격추했다. 그런데 그 비행기는 전혀 회피 기동을 하지 않았다. 마치 사격 연습용 표적처럼 가만히 날고 있었다."
군인들은 보통 자신의 군번을 새기지만, 그는 자신의 문학적 유산과 아내의 이름을 새긴 팔찌를 차고 나갔다
은제 팔찌(ID 팔찌), 1998년, 그가 실종된 지 54년 만에 지중해 마르세유 앞바다의 한 어부의 그물에 걸려 올라왔다.
ANTOINE DE SAINT-EXUPE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CONSUELO (콘수엘로)
c/o Reynal & Hitchcock, 386 4th Ave. N.Y. City, USA (미국 뉴욕의 출판사 주소)
어린 왕자』 21장(여우와의 만남)과 26장(뱀과의 이별)에서 반복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Tu es responsable pour toujours de ce que tu as apprivoisé. Tu es responsable de ta rose...)
여우가 일깨워준 책임 (21장) 여우가 떠나가는 왕자에게 비밀을 알려준다.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하지만 너는 잊으면 안 돼.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영원히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에 대해 책임이 있어."
죽음 직전, 결심을 굳히는 대사 (26장) 왕자가 뱀에게 물리기 직전, 두려움에 떠는 조종사에게 자신이 왜 죽어야만 하는지 설명.
"아저씨도 알 거야. 내 꽃 말이야... 나는 그 꽃에 책임이 있어! 내 꽃은 너무나 연약해! 너무나 순진하고! 자기 몸을 지킬 거라고는 보잘것없는 가시 네 개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