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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oine de Saint-Exupéry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상태 https://infos.tistory.com/7484'
'Marie de Fonscolombe (마리 드 퐁콜롱브) https://infos.tistory.com/7491'
'Consuelo de Saint-Exupéry와 사건 https://infos.tistory.com/7485'
'Consuelo de Saint-Exupéry (콘수엘로 드 생텍쥐페리) https://infos.tistory.com/7486'
'The Tale of the Rose (장미의 추억) 일부 내용 https://infos.tistory.com/7487'
'ExistentialMysticism (실존적 신비주의) in TheLittlePrince https://infos.tistory.com/7489'
'Silvia Hamilton Reinhardt (실비아 해밀턴 라인하르트) https://infos.tistory.com/7488'1875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인 '퐁콜롱브' 가문에서 태어남.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환경에서 자랐다.
1896년: 장 드 생텍쥐페리(Jean de Saint-Exupéry) 백작과 결혼. 이 결혼을 통해 두 명문 귀족 가문이 결합했으나, 실질적인 재력보다는 명예 중심의 결합이었다.
1900년: 셋째 앙투안을 출산.
1904년: 남편 장의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 마리는 29세의 나이에 다섯 아이를 홀로 책임지게 된다. 이때부터 가문의 경제적 몰락이 가팔라졌으나, 그녀는 아이들에게 가난을 실감하게 하지 않는 방향의 선택을 보인다.
1904년 ~ 1909년: 할머니 소유의 '생모리스 드 레망' 성과 친정 소유의 '라 몰' 성을 오가며 생활. 마리는 아이들에게 시, 음악, 그림을 가르치며 '세속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가 우월하다'는 귀족적 낭만주의를 주입한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마리는 간호사로 자원봉사하며 귀족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1917년: 차남 프랑수아가 15세의 나이로 앙투안의 품에서 사망. 앙투안과 함께 스위스 유학 중이던 프랑수아가 병사한다.
프랑수아는 1917년 7월 10일, 스위스 프리부르의 빌라 플로리몽(Villa Florimont) 유학 중 류머티스열에 의한 심장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당시 17세였던 앙투안은 동생의 임종을 직접 지켰으며, 이 사건은 그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통해 '비극적 소멸'이 아닌 '신비로운 이행'으로 기록되었다.앙투안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917년): "프랑수아는 죽기 직전 저를 불렀어요. 그는 아주 평온하게, 마치 잠드는 것처럼 떠났습니다."
앙투안이 어머니에게 보낸 임종 기록 (1917년 7월): "그는 아주 평온하게, 마치 잠드는 것처럼 떠났습니다. 그의 얼굴은 너무나 맑고 평화로워서, 저는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단지 어딘가 다른 곳으로 여행을 떠난 것 같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출처: Lettres à sa mère, Gallimard)
어머니 마리가 앙투안에게 보낸 답장 (1917년 7월): "우리 사랑하는 프랑수아는 이제 고통이 없는 빛의 세계로 돌아갔단다. 그는 우리 곁을 떠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더 높은 곳에서 지켜보는 별이 된 것이나 다름없어. 너의 슬픔이 그 아이의 영혼이 누리는 평화를 방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출처: Saint-Exupéry: A Biography by Stacy Schiff / 가문 기록 재구성)
앙투안의 회고록 및 후기 서신에 나타난 어머니의 영향: "어머니는 내게 죽음이 단지 '허물을 벗는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동생이 남긴 것은 낡은 외투와 같고, 그의 본질은 하늘로 돌아갔다는 어머니의 말씀은 제가 사막에서 느꼈던 고독을 견디게 해준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출처: Un sens à la vie, 앙투안의 수필집)1919년 ~ 1921년: 앙투안이 해군사관학교에 낙방하고 건축학교를 전전할 때, 마리는 줄어드는 가산 속에서도 아들의 생활비를 대준다. 앙투안은 이때부터 어머니에게 끊임없이 돈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낸다.
앙투안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922년): "어머니, 제가 처한 이 비참한 상황에서 저를 구해줄 수 있는 분은 어머니뿐입니다. 제가 다시 비행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1926년: 앙투안이 항공사에 취업하며 비행사가 됨. 마리는 아들의 위험한 직업을 걱정하면서도, 그가 겪는 고독을 '선택받은 자의 고결함'으로 치켜세워주는 편지를 수없이 보낸다.
앙투안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926년, 카사블랑카에서): "어머니, 당신의 편지는 저에게 유일한 안식처입니다. 이곳의 고독 속에서 저는 오직 당신과 보냈던 어린 시절의 정원만을 생각합니다."1931년: 앙투안이 콘수엘로와 결혼. 마리는 며느리와 갈등을 빚기도 했지만, 아들이 결혼 후에도 자신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상황(마마보이적 성향)을 유지하도록 방치 혹은 조장한다.
앙투안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1930년대 중반): "어머니, 저는 콘수엘로를 사랑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느끼던 그 평화뿐입니다."
스테이시 쉬프의 전기 『생텍쥐페리』: "생텍쥐페리 가문은 콘수엘로를 '작고 검은 이교도'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특히 마리는 아들이 유서 깊은 프랑스 귀족 가문의 여성이 아닌, 출신이 불분명하고 두 번이나 결혼했던 여자와 결합하는 것을 가문의 수치로 여겼다."
앙투안의 편지 (어머니에게 보낸 서신, 1930년대 중반): "어머니, 제가 콘수엘로와 함께 있을 때 느끼는 지옥 같은 고통을 어머니는 모르실 겁니다. 그녀는 저를 소유하려 들고 제 평화를 깨뜨립니다. 오직 어머니만이 저를 온전히 이해해주시고 제 영혼을 쉬게 하십니다."
콘수엘로의 회고록 『장미의 추억』 중 기록: "앙투안의 가족들은 나를 돈이나 축내는 불청객으로 취급했다. 그들은 나를 자기들의 '귀족적 원형'에 맞지 않는 불순물로 여겼으며, 앙투안이 내게 돈을 쓰는 것을 가문의 자산을 훔치는 것으로 간주했다."
앙투안의 편지 (콘수엘로에게 보낸 서신): "나의 어머니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해. 하지만 당신도 내 가문의 전통을 존중해야 해. 나는 양쪽 사이에서 짓눌려 죽을 것만 같아."
기록 내용 (전기 및 가문 자료): "앙투안의 사후, 마리는 콘수엘로가 아들의 유품과 저작권에 접근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마리는 아들을 '순수한 소년 왕자'로 남기려 했고, 콘수엘로는 아들과의 고통스러웠던 실제 결혼 생활을 증언하려 했기에 두 여자의 전쟁은 아들의 사후에도 수십 년간 이어졌다."1944년: 앙투안의 실종. 아들이 정찰 비행 중 돌아오지 않자, 마리는 큰 충격을 받지만 곧 아들의 죽음을 '어린 왕자처럼 자신의 별로 돌아간 사건'으로 받아인다.
관련 기록: 아들의 실종 소식을 접한 후, 그녀는 아들이 죽지 않고 어딘가(별)에 살아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변에 피력함.1940년대 후반 ~ 1972년: 아들의 저작권 및 유품 관리에 관여하며, 생텍쥐페리가 '신화적 인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함. 마리는 아들의 유고와 편지들을 정리하며 생텍쥐페리 신화를 구축하는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녀는 아들이 보낸 편지들 중 '무책임한 내용'보다는 '아름답고 효심 깊은 내용' 위주로 세상에 알렸다.
1972년: 97세의 나이로 사망. 그녀는 가문이 완전히 몰락하고 아들이 신화가 된 세상을 거의 한 세기 동안 지켜본 뒤 눈을 감았다.
기타 앙투안이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들
어린 시절에 대한 회상 (연도 미상): "어머니, 제가 다시 그 작은 아이가 되어 당신의 치맛자락을 잡고 정원을 거닐 수 있다면 제 모든 것을 바칠 용의가 있습니다. 그 시절의 평화만이 진짜입니다."
경제적 원조 요청 시 (1920년대 초): "지금 당장 500프랑이 필요합니다. 어머니, 이 돈이 없으면 저는 당장 길거리에 나앉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디 저를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실존적 고독을 토로할 때 (1943년, 실종 전 마지막 시기): "세상은 점점 더 숫자로 가득 찬 기계들의 장소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들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것이 두렵습니다. 오직 어머니만이 저의 이 두려움을 이해해주실 것입니다."